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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유재원의 그리스코드] 1. -올림픽 왜 생겼나-
글쓴이 장소담 첨부파일 -
작성일 2013-04-03 오후 2:42:40 조회수 1801

“전쟁… 전쟁이 지겹다. 좀 쉬자.”
 
영화 덕인지 요즘 트로이 전쟁이 화제다(영화엔 오류가 많다. 트로이 전쟁에 대한 오해가 걱정스럽다). 기원전 1250년쯤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동부 지중해의 패권을 쥐게 된 그리스인들에게 뜻하지 않은 불행이 닥쳤다. ‘해양 민족’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출몰하여 동부 지중해의 도시들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이런 혼란 속에서 통상로가 무너졌고 국제 무역은 위기에 빠졌다. 그 결과 청동기 제작에 없어서는 안 되는 주석의 공급이 끊어지면서 그때까지 찬란하게 꽃피던 청동기 문명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때맞춰 북쪽에서부터 철기로 무장한 야만스러운 도리아족이 남하하기 시작하자 질서와 문명은 사라지고 문자마저 잊혀졌다. 미케네 시대에 번성하던 도시들도 모두 폐허로 변했다. 그리스의 중세라는 어두운 시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문명의 구심점이 사라지자 각 지방의 도시국가들은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무한 전쟁의 상태로 들어갔다. 이제 그리스 땅에 사는 사람들은 평화란 꿈꿀 수조차 없게 되었고 전쟁과 약탈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 누구도 전쟁의 공포와 패배했을 경우 모든 것을 잃고 노예로 전락하여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런 상태는 3백년이 지나도록 변함 없이 계속되었다. 기원전 884년 엘리스의 왕 이피토스(Iphitos)는 이런 끊임없는 내전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델포이에 신탁을 물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나라의 중대사를 결정할 때면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가서 신의 뜻을 묻곤 했다. 대답은 “이피토스 왕과 엘리스 시민들은 올림픽 경기를 부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신탁에 따라 이피토스 왕은 같은 해에 스파르타의 현자인 뤼쿠르고스와 이웃 도시국가의 왕 클레스테니스와 신성 평화 협정을 맺었다. 그리고 이 협정이 새겨진 청동 원판을 올림피아의 헤라 신전 안에 정중하게 모셨다.

이 협정은 엘리스와 올림픽이 열리는 올림피아는 신성불가침한 땅으로 어느 누구도 무장을 한 채 들어올 수 없으며, 올림픽 기간 동안에는 전쟁 행위를 하거나 사형의 집행이나 고문과 같은 폭력을 휘두를 수 없음을 명백히 했다. 또 각 국가는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여행을 하는 모든 사람들을 보호하고 편의를 봐 주어야 했다. 평화 협정기간은 처음에는 한 달이었으나 곧 먼 곳에서부터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과 관람객의 귀향까지 생각하여 석 달까지로 연장되었다. 어떤 나라든 이 협정을 위반하면 무거운 벌금과 함께 그 도시 시민들은 올림픽 경기에 참가는 물론 관람까지도 금지되었다. 만약 어떤 국가가 벌금을 물지 않으면 델포이는 그 국가에 대해 신탁을 거절했다. 이는 중세 유럽의 파문만큼이나 무거운 처벌이었다.

기원전 420년 스파르타는 올림픽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도시국가 레프레오를 점령했다. 이에 엘리스의 올림픽 위원회는 스파르타에 양 20만 마리의 값에 해당하는 2,000 므나의 벌금을 물리고 모든 스파르타인들의 올림픽 참가를 금지했다. 스파르타는 곧바로 점령군을 철수하고1,000므나의 벌금을 물고 다시 올림픽 참가권을 회복했다.
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용병이 아테네의 선수단을 약탈한 사건이 일어나자 알렉산드로스 대왕 자신이 직접 나서서 모든 것을 변상했다. 이와 같이 스파르타나 마케도니아와 같은 강대국도 올림픽 평화 협정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다.

그리스인들은 육체적 단련과 정정당당한 겨루기를 통해 인간 내부에 숨어 있는 폭력적인 힘을 정화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스포츠는 국가간의 인종적, 정치적, 문화적 난제들을 이겨내는 데 있어 가장 훌륭한 방법이다. 그러기에 스포츠는 민족들 사이의 상호이해를 촉진하는 도구이자 인간 내부, 특히 젊은이들의 내부에 숨어 있는 폭력성을 순화하는 교육적 수단이다. 젊은이들은 스포츠를 통해 자기 절제를 배우고 남에 대한 존중과 관용을 익힐 수 있다. 피부색도 다르고 문화와 국민성도 다른 젊은이들이 한 운동장에서 자신의 기량을 다해 마음껏 달릴 때, 그들에게 증오나 분노, 상대에 대한 경멸과 같은 공격적 감정이 생겨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승패가 자신과의 싸움에 달려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자신이 최선을 다할 때,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것 자체가 가장 값진 성과이자 최고의 만족이기 때문이다. 참여하는 것이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자신을 극복하는 일이 남을 때려눕히는 것보다 더 값진 것을 깨닫는 순간 그의 인격은 한층 더 높은 단계에 이른다. 이런 정정당당한 승부를 통해 자신 안에 숨어 있는 무한한 힘을 발견하고 그 힘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근육 하나하나를 움직이는 법을 배울 때, 인간은 자신과 화해하고 평화를 느낀다. 이것이 스포츠가 갖는 교육적 효과다. 이런 점에서 스포츠는 온갖 차별과 폭력에 맞서 싸우는 훌륭한 무기다.

스포츠의 이런 기능을 잘 알았던 그리스인들은 올림픽이란 체육 제전을 만들어 평화를 보장하는 장치로 삼았다. 기원전 776년부터 기원후 393년까지 1,170년 동안, 올림픽의 평화는 한두 번의 예외가 있었지만 항상 잘 지켜졌다.

하지만 근대 올림픽은 항상 폭력과 테러의 공포를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이번 아테네 올림픽은 어느 때보다도 더 테러의 위협에 떨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테러 방지 비용으로 약 1조 6000억 원을 책정했다. 근대 올림픽의 상업주의와 비대함을 비난하며 ‘인간 규모’의 올림픽을 치르겠다던 그리스의 야무진 꿈은 보안 비용 때문에 이미 불가능해진 것처럼 보인다.